이번 주에는 제주도에서 화신(花信)만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선거판 소식도 전해져 온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정치인들이 예선전을 펼치는 모양이다.
월드컵대회와 아시안게임은 물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8월 재․보선, 그리고 대통령선거 등 앞으로 펼쳐질 대형게임들이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한 해가 바로 2002년이다.
국민들이 그런 게임에 너무 빠져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수가 줄어드는 일은 차마 바랄 수 없지만, 게임의 주인공 중에 법조인이 유독 많으니 변호사님들은 그런 것에 흥미를 많이 가질 것이 틀림없고, 그리하여 올 봄부터는 소장, 준비서면, 변론요지서의 페이지수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이 한번도 안 바뀌었고 고등학교 정치경제 시간에는 유신헌법을 금과옥조인 양 배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전에는 국가원수라야 ‘이․윤’ 두 분밖에 없어서 조선시대 임금 ‘태정태세문단세…’만 외우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아예 ‘…정순헌철고순’까지 한 다음 한 박자 쉬고 나서 ‘이윤박최전노김김’까지 외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사시간에 격동의 50년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땅에 사는 학생들은 ‘김김’밖에 없으니 아직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올 12월 19일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딸애는 국사 공부하기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멱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이박정’이 맞는다고 하던가. ‘이윤박최전노김김이’, ‘이윤박최전노김김박’이든지 ‘이윤박최전노김김정’이 되든지 할 것인데, ‘이윤박최전노김김김’이 되면 외우기가 더 어렵게 된다. ‘김김김’이 각각 누구인지 또 순서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아이들한테 외우기가 좋을지를 따져 투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거나 학생들이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외우고야 말 것인즉, 누가 되든지 간에 우리네 평범한 국민들의 바람이야 한결 같으리라.
감동의 정치, 활기찬 경제, 편안한 사회, 행복한 나라. 뭐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 최고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 중에 유난히도 법조인이 많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윤박최전노김김’을 보면, 그 동안 독립운동가, 군인, 직업정치인 뿐이고 법조인은 없었는데, 이제 국민들은 법조인에게 차기(次期)를 맡길 공산이 크다.
사실 변호사는 직업의 속성 자체가 고객이 자신을 믿고 맡긴 일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처리하거나 대변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예를 보면, 공직도 그런 차원에서 고도로 훈련된 변호사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보다 양심적이고 깨끗하고 성실한 자세로 봉사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앞으로 선거를 통해 공직을 맡으려는 법조인들은 그러한 국민의 희망을 충족시켜줄 책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2002년 3월 7일자 법률신문 목요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