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988년 9월 창설된 이래 20여년 만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2010년 11월까지만 보더라도 무려 340건 이상의 위헌결정을 하였다. 이웃 일본 최고재판소가 120년 동안 20건의 위헌판결을 선고한 것에 비하면 헌법재판소 출범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반면에,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입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87년 헌법이 탄생시킨 최고의 명작인 우리나라 헌법재판 시스템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고, 성공사례로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는 국가적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을 다소 남발한다거나, 정치적으로 극도로 예민한 사건에서 타협적인 결정을 한다거나, 사법부와 사이에 권한경쟁을 한다는 외부의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되돌아보면 헌법재판소가 초창기 그 위상 정립 차원에서 국회의 입법재량권과 대법원의 명령규칙심사권을 다소 무시하면서까지 위헌심사권의 범위를 넓혀온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 동안 위헌결정이 300여건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과연 법률을 생산하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헌법적인 관점에서 법률안을 세심하게 다듬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였는지를 여기서 지적하고자 한다.
이제는 예방적 차원에서 각급 국가기관의 헌법역량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위헌법률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곳은 입법부이다.
입법과정에서 위헌성 문제를 공론화하고 헌법전문가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그러한 기능을 적극 수행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의 체계심사(體系審査)를 담당하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는 체계심사권을 적극 활용하여 법률안의 헌법적합성에 대하여 깊이 있는 심사를 하여야 한다. 그를 위하여 헌법전문가가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제18대 국회의원 임기가 2008년 5월 31일에 개시된 지 두 달 이상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지 않아 헌법기관 공백 상태가 계속된 적이 있다. 당시 여․야는 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겠다고 기 싸움을 하였다. 이러한 자리다툼 문제로 헌법기관인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법사위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회 법사위는 법무부․법제처․감사원․국가인권위원회 소관에 속한 사항, 헌법재판소사무에 관한 사항, 법원․군사법원사무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다른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도 담당하고 있다(국회법 제37조 제1항).
법사위는 특히 법률안의 자구만이 아니라 ‘법률안의 체계․형식’에 대한 심사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권한을 널리 행사하면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충분한 심의를 마친 법률안이라 하더라도 그 통과 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 관문이나 진배없다. 위원장은 사실상으로 법률안 통과를 보류할 수도 있다.
본회의에서는 경우에 따라 법률안에 대한 찬반토론을 할 뿐 실질적인 법률안 심의가 생략되다 보니, 법사위 심의가 사실상 마지막 법률안 심사 기회가 되고, 또한 법사위의 권한이 위와 같이 막강하다 보니 여․야 어느 쪽도 그 자리를 상대방에게 양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때 법사위의 권한을 축소시켜 법사위에 상정된 지 4개월 내에 법사위가 처리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대두된 적도 있으나, 이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의견으로서 찬동할 수 없다.
법사위에 법률안 체계 심사권을 부여한 것은 주로 법률전문가로 구성되는 법사위로 하여금 법률안의 헌법적합성과 다른 법률․제도와의 정합성 여부에 대하여 깊이 있는 심사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그 심사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법사위와 관련하여 더 심각한 문제는 유능한 법률전문가들이 변호사휴업 문제로 법사위 배정을 기피하는 사태이다.
이러한 결과야말로 법사위의 권한 행사에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다음, 법률안 제안권을 가진 행정부도 헌법역량을 대폭 강화하여야 한다.
행정부처마다 법률가를 법무담당관으로 임명하여 위헌심사를 강화하는 일, 법무부에 헌법 담당 과 조직을 신설하는 일, 법제처의 법안 심사 시 헌법심사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일, 헌법전문가로 구성된 가칭「위헌심사위원회」를 두어 모든 법률안에 대하여 그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일 등의 방안을 검토하여야 한다.
이러한 각종 법안의 위헌성 심사․분석 및 사전 대책 강구를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가칭 「헌법영향평가제」를 입법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나아가, 법관들의 헌법재판 역량 강화도 시급한 과제이다.
헌법역량이 부족하게 되면 소송당사자의 위헌 주장에 대한 판단이유가 미흡하여 설득 기능이 떨어지고, 위헌제청신청에 대해 본안판결 시까지 무작정 결정을 미루거나 뒤늦게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였다가 헌법소원으로 나중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게 되는 일까지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변호사들의 헌법역량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사건의 최첨단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법률제도의 개선에 노력하여야 할 변호사야말로 항상 헌법적 잣대로 사건을 바라보고 필요한 위헌 주장을 적극 개진함으로써 헌법이 살아 숨 쉬는 재판규범으로서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