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의 기도
애완견과 위자료

며칠 전에 아내와 대형마트에 갔다. 알록달록한 옷이 매대 위에 있었다. 너무 작은 사이즈라 어린아이의 옷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쿠키와 쿠션과 악세사리까지 있는 애완견 코너였다. 애완견을 키우는 집이 많아졌다. 사람보다 더 친밀하니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애완견 새끼 낳는 비용이 산부인과의 아기 출산비보다 비싸다고 한다. 우리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어느 아주머니가 애완견을 안고 ‘애기야, 엄마야’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러고 보니 품에 안겨 있는 애완견은 아기처럼 옹알이까지 하는 것 같았다. 개와 인간은 예로부터 가까운 관계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욕설에는 ‘개’가 들어간다. 아무리 가까워도 동물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의지적인 경계 긋기가 아닐까. 한편 동물 편에서 보았을 때 ‘개’는 그야말로 ‘인간’ 편에 서서 동물을 배신한 인간앞잡이이기 때문은 아닐까. 개에 대한 욕설과 친근감이 공존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인 듯하다. 애완견이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쳤다. 주인은 당연히 애완견을 새로 사는 값보다 더 들여 수술도 하고 정성껏 치료를 하였다. 주인은 반려동물이 다쳐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위자료도 청구하였다. 자동차보험회사는 애완견은 어디까지나 ‘물건’에 불과하니 이른바 ‘개 값’만 물어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은 애완견 주인이 가진 각별한 정신적 유대와 애착의 정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여 위자료도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애완견에 대한 변화하는 사회통념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는 운전을 할 때 사람만 보지 말고 애완견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바캉스 시즌만 되면 길에 개를 버리는 유럽을 생각하면 애완견의 시대가 예사롭지만은 않다. 유럽의 묘지나 바닷가나 관광지에는 버려진 개들이 득실댄다. 개들은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구한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이다. 애완견에 대해 위자료를 받으려는 입장이나 키우던 애완동물을 매몰차게 버리는 입장이나 내가 보기에는 모두 지극히 ‘인간중심주의적’ 태도이다. 지금 막 새끼를 낳은 어미에게서 눈도 제대로 못 뜬 강아지를 떼어내 애완견으로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2011년 7월 30일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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