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목

알렉산더 해밀턴의 생애(1)

알렉산더 해밀턴

 

1685 외조부 존 포셰트(내과의사), 프랑스에서 네비스 섬으로 이주

1718 존 포셰트=메리 어핑턴(영국계) 결혼

- 장녀 앤 포셰트=제인스 리턴(덴마크령 세인트크로이 섬으로 이주)

- 아버지 제임스 해밀턴, 스코들랜드에서 출생

1729 어머니 레이쳘 포셰트 출생

1740 외조부 존 포셰트=메리 어핑턴, 이혼

- 메리와 레이쳘, 세인트키츠 섬으로 이주

1741 아버지 제임스 해밀턴, 영국을 떠나 세인트키츠 섬으로 돈을 벌러 감

- 제임스 해밀턴(23)-레이쳘 포셰트(12)와 만났을까?

1745 외조부 존 포셰트 사망.

- 어머니 레이철이 재산상속

- 메리와 레이쳘은 장녀 앤 부부가 사는 세인트크로이 섬으로 이주

1745 레이쳘=요한 미카엘 레비앙과 결혼

1750 레비앙, 레이쳘을 요새에 감금

- 상인 토머스 스티븐스(生父?)와의 불륜 때문?

1750 레이쳘(21), 세인트키츠 섬으로 도망 감

- 항구 경비인 제임스 해밀턴(32)과 만남(15년간 사실혼관계)

1754 프렌치-인디언 전쟁(1764)

1755(0) 영국령 서인도제도 네비스 섬에서 출생

- 제임스 해밀턴(37)-레이쳘 해밀턴(26). 형 제임스 해밀턴(2).

1759(4) 레비앙-레이쳘 이혼. 레이쳘에게 재혼 금지 판결

1765(10) 세인트크로이 섬 크리스쳔스테드로 이주

1765(10) 제임스 해밀턴, 처와 2남 버려두고 다른 섬으로 떠나다.

- 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 레이쳘은 잡화점 경영. 노예5

1768(13) 어머니 사망. 이복형 피터 레비앙이 재산상속.

- 이종사촌 형 피터 리턴이 후견인이 됨

1769(14) 후견인 리턴도 자살. 고아가 됨

- 뉴욕 무역회사 비크먼앤드크루거에서 일을 배우다

(뉴욕 사업가 니컬러스 크루거)

- 상인 토머스 스티븐스(生父?) 집에 기거!

- 1살 위의 에드워드가 매우 닮았다고 함.

1770(15) 지역신문 로열 대니시-아메리칸 가제트창간

1771(16) 니컬러스 크루거가 5개월간 일을 맡기고 뉴욕행

1771(16) 로열 대니시-아메리칸 가제트에 시() 기고.

1772(17) 세인트크로이 섬에 부임한 휴 녹스 목사(저널리스트 겸임)를 만나다.

1772(17) 치명적인 허리케인 강타. 멀리 있는 아버지에게 쓴 명문장 편지가 로열 대니시-아메리칸 가제트에 실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와 북아메리카 유학 모금 펀드 조성 활동이 일어나다.

북아메리카 보스톤항에 도착하여 뉴욕(다니던 무역회사 본사가 있다)으로 가다.

재단사 허큘리스 멀리건(1740년생)을 사귀다.

1773(18) 뉴저지 소재 예비학교 엘리자베스타운아카데미에 등록(휴 녹스 추천서).

윌리엄 리빙스턴(50) 변호사를 만나다. 자녀들과도 친분. 딸 캐서린과 사귀다.

엘리아스 부디노 변호사를 만나 사귀다.

보스톤 차 사건발생.

1774(19) 뉴욕(인구 25,000) 킹스칼리지(=컬럼비아대학) 입학.

보스톤의 신문에 기고 및 뉴욕 커먼 광장 대규모 집회에서 명연설.

대륙회의의 조치에 대한 포괄적 변호”(35) 사설 집필.

1775(20) 농부에 대한 논박”(80) 집필로 유명해지다.

렉싱턴 전투, 통코드 전투.

학생 자원병으로서 민병대 코르시칸의 군사교육을 받다.

2차 대륙회의(510). 조지 워싱턴 대령(43) 대륙군 총사령관 임명.

<뉴욕 저널>에 익명 사설 감시자” 14편 기고(1776).

1776(21) 토머스 페인, “상식출간.

킹스칼리지는 독립군 병원으로 징발되어 학업 중단.

포병 대위가 되다(68).

독립선언서 최종본 완성(74).

독립군, 뉴욕에서 참패. 화이트플레인즈 전투 패배. 3000명만 남아 뉴저지로 후퇴.

1777(22) 프린스턴대학 주둔 영국군 200명 생포.

중령 진급.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의 부관(참모장급)이 되다.

단짝 동갑 존 로런스 부관을 만나다.

허레이쇼 게이츠 장군의 북부 대륙군,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군 버고인 장군의 5,700명 항복시킴.

1778(23) 프랑스, 미국 독립 승인 및 참전.

먼마우스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다.

1779(24) 뉴저지 모리스타운 기지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다.

1780(25) 뉴욕 올버니 대지주 필립 스카일러 장군(대륙회의의원)의 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22)와 사귀다. 결혼식.

1781(26) 워싱턴 총사령관의 부관을 그만두다.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18-05-08

조회수8,906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